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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256

​홍진훤 2018.12.15 - 2019.02.14 스페이스산호 제주

기획의 글 _ 최혜영

          제주 해군기지 준공 후엔 처음 온다며 홍진훤 작가는 건물들의 조악함에 대해 토로했다. 조악하다는 뜻은 사전에서 ‘(물건의 상태가) 거칠고 나쁘다’고 정의한다. 단박에 알아듣진 못했다. 1.2km의 구럼비 바위를 파괴하고, 마을을 지키고자 한 사람들이 희생되며 지은 것이 고작 저런 콘크리트 건물들이냐고 다시 물었다. 기지 건물들을 보다가 기분이 상해 연락도 못하고 바로 강정을 떠나 왔다고도 덧붙였다. 그가 다시 강정마을에 방문 했을 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물들의 조악함에 대신 사과하고 싶었다. 해군기지를 지은 것은 내가 아닌데. 제주 수선화를 꺾어 만든 다발을 건네고 냇길이소에 데려 갔다. 강정에 대한 기억이 조악함이 아닌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란 오지랖이었다. 그는 여전히 강정 하면 조악한 건물들이 먼저 떠오를까. 제발 아니길.


        홍진훤 작가의 작업들은 자주 존재의 부재함에서 오는 적막함, 허무를 이야기 한다. 반복되는 비극의 현장에서 이런 풍경들도 괜찮냐며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괴기한 개발의 풍경들은 ‘과거의 부재’와 ‘스스로 부재될 운명을 존재로써 증명’하고 (『임시풍경』), 학살 혹은 희생의 현장을 찾은 그가 발견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던 “곳”이 아닌 역사 그 자체로 퇴적되어 생존 한 “것”(『붉은, 초록』)’이 었다. ‘덧없는 표류의 애잔한 기록’(『마지막 밤(들)』)과 ‘있어야 할 것의 없음’을 ‘알아차’리는 일(『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은 질주하는 시간 안에 망각된 ‘누군가의 부재를 증명’하는 기록이다.

          『붉은, 초록』 도록에서 처음 홍진훤이라는 이름을 만났다. 사진 속 강정의 풍경들은 낯설었다. 오키나와, 밀양, 후쿠시마로 이어진 풍경들이 오히려 더 익숙했다. 오랜 시간 강정에 살며 싸우며 뜯겨진 풍경들이 낯설게 다가왔다. 강정에 살면서 자주 언어를 잃었다. 사라지는 풍경과 사라지는 사람들과 살아지는 장면 속에서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허수경, 「나는 춤 추는 중」) 왔다. 잃고 사라지는 것들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또 다른 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강정투쟁 11년 동안 지나쳐 간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투쟁이, 운동이 졌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사람들이 버티고 있기에 끝은 없다. 강정의 투쟁 풍경은 이전의 다른 현장과는 달랐다. 자발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의 먼저를 온 미래를 살아냄으로 지속하고 있다. 잃어버린 언어를, 목소리를 다시금 찾는다. 그것은 때로 강정에서는 춤이거나 시나 그림이 된다.

          폭염이 지속된 2018년의 여름, 쉼인지 새로운 작업인지 모를 러시아로 떠난 홍진훤 작가는 언어가 부재한 상황에 놓여졌다.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기호들의 나열로 제목(『✈☆☂☞☭☺♕⚒♖♘☃♡♬✞⚔ 』)을 지어 러시아에서 전시를 했다. 궁금했다. 왜 그는 러시아에 갔을까.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매일 혁명 광장을 부지런히 다니며 그가 본 것은 무엇일까. 셀카봉을 들고 한차례 광장을 쓸고 지나가는 한국 관광객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중국인 관광객들, 관광객들이 던진 부스러기를 먹는 비둘기떼, 작은 깃발을 든 젊은 가이드 남성이 잘못된 정보를 설명해도 아무도 개의치 않은 모습,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와 러시아 혁명에 대해 짧게 설명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나면 건너편 유리로 장식된 중앙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는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 반복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지역 케이블 방송 256번은 24시간 혁명광장을 CCTV로 비춰주는 채널이라 했다. 작가는 혁명광장에 나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거나 숙소에서 채널 256번을 통해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광장 속 CCTV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일까. 안다는 것은 이해 한다는 일일까. 보이는 것을 다 알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을 흐릿하게 보는 일. 그가 러시아에서 한 일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작업노트 _ 홍진훤

          블라디보스토크는 혁명과 강제이주라는 단편적인 단어로만 정의되는 곳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자연스럽게 혁명광장으로 발걸음이 향했다. 그곳은 러시아 혁명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자 고려인 강제이주가 시작된 곳이다. 두 개의 이야기가 물리적으로 중첩되는 곳. 이제는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한 혁명광장은 거대한 쇼핑몰들에 둘러싸여 그 용도가 변화했지만, 나의 못된 사고의 관성은 지금의 풍경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의 광장에 앉아 과거의 광장을 찾고 있는 이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생각하다 내가 늘 사진으로 해온 일이 그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거의 매일 광장에 나가 그 어긋난 시선들을 사진으로 확인하고 만난 사람들과 혁명과 강제이주에 대해 짧은 생각을 나눴다. 그 간극을 경험하는 일은 결국 무엇인가를 안다고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극적으로 무지를 생산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그 낙차를 인지하는 일은 현재를 과거화 하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알아차리는 과정이었다.

          혁명과 강제이주를 다루는 민족주의적 접근이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아 시작한 삿대질이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혁명광장의 쓸쓸함과 번잡함이 조금씩 익숙해 질 때 쯤 기어이 고려인 집성촌인 우수리스크의 풍경을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원인 기차를 타고 도착한 우수리스크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시 비둘기의 배설물로 뒤덮인 레닌 동상을 지나 한적한 숙소에 도착했다. 호텔에 갇힌 채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의 풍경을 보면서 이것이 나와 이 곳과의 좁힐 수 없는 거리인 것 같아 이내 씁쓸해졌지만 동시에 비릿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이 대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그것이 가능한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허무한 답을 거쳐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서 어떤 이해를 다시 생산해 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는 지난한 과정을 또 한 번 겪고 나서야 블라디보스토크의 매캐한 매연이 조금 익숙해졌다.

          혁명 광장 한 구석에 앉아 거대한 서사를 한 덩어리로 선언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떤 장면 앞에서 너무 쉽게 가해와 피해를 규정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뒤엉킨 시간들을 개별의 사연으로 파편화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엇 하나 편하게 수긍하기 힘든 이 상황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고 무슨 말을 할 수 없는가에 다시 다달았다. 무엇을 알아간다는 것은 언어를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배회화고 바라보며 나의 말을 찾아보는 무용한 일을 멈출 수는 없을것 같다. 아직 세상에는 말해야 할 것들 이 너무 많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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